
1990년대 한석규의 이름은 곧 흥행 보증 수표였다.
TV를 통해 먼저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는 자연스럽게 영화계로 무대로 옮겼고, 로맨틱코미디부터 멜로, 액션 블록버스터에 이르기까지 한석규의 이름 석 자는 영화의 흥행과 완성도를 책임지는 보증수표가 됐다. 특히 한석규의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와 도시적인 섬세함이 배어있는 얼굴은 그간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이기도 했다.
1990년대 한석규의 얼굴은 가장 '보편의 얼굴'로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CGV 피카디리 1958 - 2010년대 명예의 전당 배우 선정
대한민국의 배우.
2. 상세[편집]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로,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연기와 탁월한 작품 선택으로 한 시대를 평정하였고, 자신이 출연한 작품 중[5] 그야말로 말이 필요없는 1990년대 흥행성과 작품성을 모두 사로 잡으면서 한국 영화 역사에 새겨넣은 유일한 배우이기도 하다.
한국 남자 배우들 중 연기력으로는 단연 손가락에 꼽히는 배우 중 한 명이다. 연기 스펙트럼도 꽤 넓어서 맡아 본 역할도 굉장히 다양하다. 특히 배우로서 한석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목소리와 발성. 김상중, 이선균과 함께 대한민국 연예계 최고의 동굴 목소리와, 감성적이면서도 엄청난 카리스마를 폭발시키는 깊고 묵직한 발성을 가졌다.
역사적으로 보면 1980년대 안성기가 충무로의 황제로 영화계 전반을 장악하던 흐름이 90년대에 와서 문성근, 박중훈, 최민수, 이경영 등 신진의 등장으로 점차 파이가 분할되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다양성이 발화되던 영화판을 일시적으로 한석규 1인의 시대로 봉합했으니 그 위상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00년대로 가서는 이 파이가 다시 충무로 트로이카[6]로 나뉘게 되며 그 이후로 김윤석, 황정민, 이병헌, 하정우 등 후발주자들이 추가로 대거 등장하면서 춘추전국시대로 돌입한다.
2000년 이후로 흥행 부진을 겪었으나 사극, 블랙 코미디, 스릴러, 정치물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작품 선정과 더욱 원숙해진 연기력을 바탕으로 2010년대부터 다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3. 활동[편집]
3.1. 데뷔 전, 성우 활동[편집]